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무한 후기 채사장
50쪽쯤 읽고 이거 그냥 힙합 반야심경으로 한큐에 해결되는 건데 이걸 현대 지식인들이 좀더 최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언어로 풀어쓴 건가... 라고 느낌... 과연 감상이 바뀔까요
2장~ 딱히 새롭게 알게 된 건 없는데... 아는 걸 정돈된 언어로 적어줌에 있어서 읽는 것만으로 명상으로 작용하는 좋은 책이었도다... 개인 의견:이 지혜들 불교에서 이미 이루고 있다고 생각해서(여기서 내내 다루는 것도 불립문자로 축약되는 것을.... 저자가 종교와 세간의 어떤 지식과 구분짓고 싶어하면서 솔직히 명칭에 있어서 불교적 개념에 너무 많이 의지하고 있음) 굳이? 싶기는 한데... 불교도 불교란 네이밍 때문에 기독교같은 종교라는 틀로 갇혀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진짜 보편적인 현대인 기준.으로 전달하기에는 매우 잘 쓴 책이라고 생각해
5장~실천 출세 부분은 좋았음... 근데 이거 걍 색즉시공에 멈춘 사람들한테 공즉시색까지 알려주는 거잖아요(ㅋㅋ) 내용은 좋지만 굳이 새로운 개념과 정의, 언어를 만들어내는 척 할 필요 있었나?싶음.... 실천 들어갈수록 모든 종교와 학문적 지식을 아우르는 척 하지만 불교마인드.인 거 이제 숨기지도 않잖아요!!!ㅋㅋㅋㅋㅋㅋㅋㅋ 하지만 타겟팅이 지대넓얕 시리즈 읽는 현대인인 거겠지 OK입니다
진짜 더이상 자아 내면어쩌구 책은 안 읽어도 될 거 같음... 진리에 내가 모르는 새로운 건 없다... 물론 또 세상의 상념에 끌려갈 테니 수시로 알아차려야겠지만... 그 이상으로 탐구할 건 없다, 몸을 정비하는 데에 더 신경써야할 뿐
옳은 말, 옳은 판단, 그른 말, 그른 판단이 있는 것이 아니다. 말과 판단은 언제나 어리석음과 연결되어 있다. 왜냐하면 말의 본질은 세계를 분절하는 것이고 판단은 언제나 좋고 나쁨의 이분법적 분할이기 때문이다. 실제 세계는 분절되어 있지 않고 이분법적으로 나뉘지 않는다. 그래서 세계의 실상을 보는 사람은 말을 줄이고 판단을 멈춘다.
고독은 즐기는 길이다. 잊어서는 안 된다. 고독은 당신 영혼의 무늬다. 그것은 특수한 감정이 아니라 존재의 본래 모습이다. 본질적으로 내면의 길은 나의 길이지, 누군가와 함께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이 세계를 일으킨 것도 나고 굳이 이 신체로 이 세계를 경험하기로 한 것도 나임을. 나는 나를 괴롭히지 않으리라. 나는 세상을 미워하지 않으리라. 이제 시간이 되었다. 몸을 일으켜 세상으로 나아간다.
현실에서 마음을 빼앗는 무엇이 생기면 거기에 마음을 빼앗길 것이고, 욕망이 일어나면 그 욕망에 휘둘릴 것이다. 조금만 바빠져도 신경 쓰지 못할 것이고, 사회에서의 작은 성취만 있어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며, 피로하면 피로하다고 귀찮아할 것이다.
하지만 죄책감을 갖거나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깨달음은 인생에서 너무도 중요한 일이지만 동시에 아무 일도 아니다.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지만 동시에 언제까지 끝내야 하는 숙제나 의무가 아니다. 길고 긴 인생이라는 시간 동안 천천히 도달하면 되는 일이다. 그러니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보고, 해야 하는 것을 다 해놓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꼼꼼하게 챙기고, 반짝이는 세상을 구경하면서 느긋하게 가면 된다. 깨달음은 어차피 당신 내면에 있고, 깨닫든 깨닫지 못하든 당신이 곧 깨달음 그 자체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