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감상 22.01.28 후기 스티븐 핑커
2025 : 이거... 표본 왜곡한 게 많대서 우리 본성의 악한 천사 봐야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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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맘에 와닿은 깨달음은... 감상 적을때 좋앗다..<로 요약가능하기때문에 굳이 뭘 안 적고 싶어지는..그런게 있어.... 말로 풀어 쓰면서 내..가슴안에잇는게 희석되고 애매한 어휘력으로 왜곡되는 느낌이라????외부에 꺼내고싶지않은..그런..느김... 웅....
언젠가부터.. 복수하거나 범죄저지르고 이런건 얼마나 멋지게 포장하든 걍...ㅍ_ㅍ하고 보게되는 그런 감정.... 선한 건 지능의 문제아닐까? 머리좋을수록 협력과 신뢰 상호적인 이익을 추구하지 않나?? 하는 막연한 생각이 잇엇는데 그걸 여러 사례와 통계 수치 들어가면서 설명해줘서 좋앗어...심지어 알기 쉽게 설명해주어서 1140페이지엿지만 진자로 다 필요한 내용이고 문장들이엇다!! 읽는데 10일?9일쯤 걸린거같은디 재밋고 너무좋은책이엇다...
과거는 너무 낭만화되어잇고...잔인한 현대인 거 같지만 폭력은 계속 줄어들엇고 인간은 나아지고잇단것이야.... 내내 꾸준히 언급되는 20대 남성의 이 폭력성.. 어카냐.... 남자들생각하면 한숨이나와요 그치만 그럼에도 내 맘은 지금 긍정으로 가득찻다... 솔직히 분노하는 건 너무 지쳐 분노할일이 너무너무많아서 거기에 다 슬퍼하고 분노하고 그러고있다보면 내가 낡고 세상에 환멸이 나서 자포자기하고 다 죽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이 된단 말야.... 차라리 좋은 발전이 한발짝이라도 나오면 그게 불완전해서 불만스럽더라도 심지어 비관적인 전망이 예측된대도 쓸모없는걸로 만들지않고 거기에 기뻐하고 칭찬하고 추켜세워서 그런걸 더 많이 일어나게 하고 싶고 보고 싶어....
"내 말은 현 상태에 만족하자는 것이 아니다. 남아 있는 차별과 학대에 대한 싸움을 폄하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어떤 권리 운동이든 첫 단계는 그 수혜자들에 대한 공격과 살해를 막는 것이었음을 상기시키려는 것이다. 비록 부분적일지라도 이런 승리의 순간들은 우리가 떳떳이 인정하고 음미하고 이해해야 한다."
내내 느낀 거지만 특히 8장 내면의 악마들..인간을 폭력적 가학성으로 만들고 합리화하는 기능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래도 필요한 부분이라고 하고... 9장 이름이 선한 천사들인데 앞에서 그렇게 이상적인 게 아니다 과대평가되고있다 하고 알려주는 게 좋았음... 너무 극단적으로 판단하지 않게 염려하고 미리 균형을 잡아주는 느낌??
아니.. 나 이제 뭘 알고 뭘 배우고 깨닫는건 결국 긍정과부정의 조화.. 지적능력과 동물적성향의 균형..그것은 매우 보편적인 진리...ㅇㅈㄹ상태되는데 어캄???그치만 진짜 어느쪽에서도 한쪽 극단적으로 치우치면 안되고 두 가지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단 말이야...
범죄는 평범한 동기고 사실 별 이유 아니고.... 명예와 영광 신념에 목숨걸었던것들도 그렇게 신성하지도 않고...
세상은..명쾌한 방향성과 완전명료한 답?예측을 내릴 수는 없다..는 거 아닐까? 확실한 미래는.... 그럴지도 모르지만 아닐지도 모른다. 인생의...성숙함이란? 미래나 세계의 불확실성이 두려워서 어떻게든 확실한 답을 얻고(내리고)싶은 불안과 무언가를 극단화시켜서 찬미하거나 냉소하고싶은 욕망을 누르고 이걸 받아들여야하는 거 같다.... 세상도 사람도 그렇게 최악도 아니고 그렇게 이상적인것도 아니다...
그치만 그렇게 생각하니까 더 맘이 벅차오르는걸.......... 삶의 무언가가 그렇게 대단하지 않고 별거 아님을 상기할 때마다 그만큼 더 소중해지는 기분이 잇는 거 같은데 왤까... 그치만 진짜루... 그냥 나 혼자 옛날부터 스스로 우주의 먼지중 하나라고 생각하면 편안하고 맘놓게되는 그런 감성이 쭉 이어져온것일까..... 막 우상화되는 사람도 그냥 남들과 다 똑같은 사람이고 그렇게 모든게 대단할 건 없다고 생각하면 멸시하거나 실망하게 되는 게 아니라 더 멋지구 소즁해진단말여~~ 사실 세상의 모든게... 실제 현상만 놓고 보면 정말 별거 아니고 아무 가치 없는데 우리가 스스로 그런 가치를 부여하고 열광하고 좋아하고 중요하게 여기고 잇단 거니까?????
"셰익스피어 비극의 결말에서는 무대에 시체들이 나뒹굴고, 아마도 저 높은 곳 어딘가에 정의가 어른거릴 것이다. 반면에 체홉의 비극에서는 모든 인물들이 환멸을 느끼고, 씁쓸해지고, 상심하고, 실망하고, 철저히 망가진 상태로 끝나지만, 여전히 모두가 살아있다. 그리고 나는 셰익스피어식이 아니라 체홉식으로 비극이 해결되기를 바란다."
읽고 새로 드는 생각인데... 모범적이고 공감잘보이고 선하고 그랫던 사람이 갑작스런 사고로 눈확겉질이 손상돼서 자제력이 없고 상스럽고 무례한말을 수시로하게되고 충동적이고 산만하고 불안정하고 폭력적이 되어서 딴사람이 되어버리면 어덕해?.... 사고로 그렇게 된다면.. 여전히 사랑할 수 있을까? 과연...... 사고가 나도 사랑한다는 건 신체를 잃는걸 상상하지 대체로... 그것도 물론 신체장애에 따르는 불편이나 사회적인식이 너무많아서 헤어지거나 하도록 스토리를 다룬 얘기나 인식도 많은데...그게 기본이라서 이제 그것도 진정한 사랑과 체력이 있으면 얼마든지 기꺼이 감수해낼 수 있는 물리적인?불편이란 인식이 드니까... 하지만 인품이 바뀌는거까진..? 상상을 잘 안 하잖아...근데 뇌가 손상되면 얼마든지 그렇게 기능이 안 될 수가 있는 건데.... 전처럼 온전히 사랑할 수 있을까....?
일화에는 사고로 눈확겉질이 손상된 그 사람이 갑작 변화햇단 일화는 결국 균형을 많이 회복했다고 여러세대 걸쳐서 심리학수업에서 얘기되면서 부풀려지고 때로 왜곡된 면이 없지 않다고 하지만.... 곰곰... 범죄 저지른 사람들.. 그중 특히 싸이코패스 포함해서 이런 뇌의 기능성 문제로 반사회적인 사람들이 회복되거나 사회화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이제 그런 얘기를 자세히 찾아보고 싶어... 늘 맘속에서 걸리던 거엿기때문에.....
아무튼... 좋은 책이엇다... 짱입니다
아래는... 이북 앱에 형광펜 친거랑 별개로 좋아서 긁어놧던거 백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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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명 불가능한 신념의 더 큰 위험은, 폭력적 수단으로 그것을 변호하려는 유혹이 든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에 집착하게 된다. 그 신념의 타당성이 자신의 능력을 반영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권위를 주기 때문에, 자신의 지휘를 합리화하기 때문에. 누군가의 신념에 도전하는 것은 그의 존엄, 지위, 권력에 도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신념이 오로지 믿음에만 의존할 때는 만성적으로 취약하기 마련이다.
돌이 위로 굴러가지 않고 아래로 굴러내린다는 신념은 누구도 기분 나쁘게 하지 않는다. 제정신이라면 누구나 제 눈으로 볼 수 있으니까. 그러나 아기가 원죄를 안고 태어난다거나, 신이 세 인간의 형태로 존재한다거나, 알리는 마호메트 이래 두 번째로 신성한 인간이라거나 하는 신념은 다르다. 사람들이 이런 신념에 따라 삶을 조직하면, 그리고 그런 신념이 없어도 잘 사는 듯한 사람을 보면ㅡ그 신념을 그럴듯하게 논박하는 사람이라면 더 나쁘다.ㅡ 그때는 자신이 바보로 보일 위험에 처한다. 게다가 신념이 오로지 믿음에 기반할 때는 회의주의자에게 설득력 있게 그 진실성을 변호할 수가 없으므로, 신자들은 불신에 대해 분노로 대응하기 쉽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 대한 모욕을 뭐든지 제거하려 든다.
대부분의 인류 역사에서, 전쟁에 대한 정당화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간명하게 표현한 논리로 손쉽게 해결되었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정복은 정부의 일이었다. 제국들이 융성했고, 제국들이 몰락했고, 온 인구가 절멸하거나 노예화했다. 누구도 그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위대한 누구'라는 존칭을 얻은 역사적 인물들은 위대한 예술가, 학자, 의사, 발명가, 혹은 인류의 행복과 지혜를 증진시킨 사람들이 아니었다. 너른 영토와 그곳의 사람들을 정복한 독재자들이었다. 만약에 히틀러의 운이 좀 더 지속되었다면, 그는 아돌프 대제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을 것이다. 요즘도 보통의 전쟁사들은 독자에게 군마, 갑옷, 화약에 대해서는 잔뜩 알려 주면서도 그 광시곡 때문에 무수히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다는 점은 그저 막연하게만 언급한다.
"자네는 왜 자네의 이익을 위해 나를 죽이는가? 나는 무장도 하지 않았네."
"자네는 왜 강 저편에 살지 않는가? 친구여, 만일 자네가 나와 같은 편에 산다면 나는 살인자가 되겠지만, 자네가 나와 반대편에 살고 있으니 나는 영웅이고, 이 살인은 정당하다네."
그저 인간은 상대를 어떻게 범주화하느냐에 따라 그에 대한 공감을 껐다 켰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토착민 집단 살해는 땅이나 노예를 편리하게 얻기 위한 일이었고, 희생자는 인간이 아닌 것으로 분류되었다.
전쟁이 사악한 것으로 여겨지는 한, 그 매력은 언제까지나 간직될 것이다. 그것이 천박한 것으로 여겨질 때, 그 인기가 사라질 것이다.
아침 신문을 폈을 때 1만 50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사는 어느 작고 헐벗고 겁에 질린 소녀가 네이팜탄 공습을 피해 달려오는 모습을 사진으로 보고 그 눈동자와 눈을 마주치는 세상에서는 어느 작가도 감히 전쟁이 '인간의 모든 미덕과 재능의 근본'이라거나 '사람들의 마음을 넓히고 인격을 향상시킨다'는 의견을 낼 수 없다.
폭력은 세계언어이지만 품위도 그렇다.
현대의 군대는 병사들이 더 큰 위험을 감수하도록 하는 유인책을 육성한다. 용기를 칭송하고 훈장으로 치하하는 식이다. 반대로 위험을 회피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의욕을 꺾는 유인책을 준다. 겁쟁이라고 창피를 주거나 처벌하고, 탈영병은 즉결 처형하는 식이다.
지도부와 보병들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다 보니, 군사적 표현에는 누구나 다 아는 허울이 담기곤 한다. 어느 영국 장군은 제1차 세계 대전의 살육에 대해서 이렇게 기염을 토했다. "단 한 명의 병사도 극심한 포화를 뚫거나 기관총과 라이플의 포화에 직면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었다. 끝내 그것이 그들을 쓸어버릴 텐데도...... 그토록 장엄한 용맹, 규율, 결단의 표출은 일찍이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아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나 하사관은 다르게 묘사했다. "우리는 그렇게 탁 트인 지대를 통과하는 것이 쓸데없는 짓임을 겪기 전에도 알았다. 그래도 가야 했다. 앞에는 악마가, 뒤에는 깊은 바다가 있었다. 전진하면 사살된다. 후진하면 군법 회의에 회부되어 사살된다. 어쩌겠는가?"
본능이 의식에 알려주는 바를 고분고분 자연의 이치로 받아들이지 않고 본능 자체를 조명하는 능력, 이것이야말로 본능이 우리를 나쁜 방향으로 이끌 때 그 힘을 뿌리치는 첫 단계이다.
사람들은, 특히 남자들은, 자신의 성공 가능성을 지나치게 확신한다. 그래서 싸움의 결과가 각자 생각했던 것보다 더 참혹하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특히 남자들은, 개인과 집단의 우세를 놓고 경쟁한다. 우세 경쟁에 뛰어든 사람들은 서로를 있는 그대로의 가치에 따라 분류하지 못하고, 결국 모두 손해를 입는 것으로 끝나기 쉽다. 사람들은 자신의 결백과 상대의 악의를 과장하는 계산법 때문에 복수를 추구한다. 양측이 완벽한 정의를 추구할 때는, 그들 자신은 물론이고 후손들에게까지 분란을 선고하는 셈이다. 사람들은 손수 가하는 폭력에 대한 거부감을 극복할 수 있을 뿐더러, 가끔은 그것을 갈망하는 취향까지 발전시킨다. 혼자서나 동료들과 함께 폭력에 탐닉하는 상황에서 충분히 가학성을 발휘한다. 또한 사람들은 개인적으로는 지지하지 않지만 남들이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이유로 어떤 신념을 지지할 수 있다. 그 신념은 닫힌 사회를 장악할 수 있고, 그래서 모두가 집단 망상의 주술에 걸릴 수 있다.